서울 한양도성 스탬프투어(2)
세번 째 탐방. 한양의 도성이 종로구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처음의 시작점이라 종로구에 편입시켰다. 한양 도성의 북쪽 북악산과 서쪽의 인왕산 성곽길 탐방은 추위가 한창이던 때 다녀왔다. 그 때에 비하면 봄 내음이 한창인 지금은 따사로운 봄의 기운을 받아 즐거운 마음으로 한껏 여유 있는 탐방을 즐길 수 있겠다.
[혜화문]
북쪽의 성곽길은 보행을 해야만 하는 반면, 동남쪽과 남서쪽의 구간은 나의 애마를 동원했다. 시간을 조금은 단축해 보자는 의미와 함께 이동의 편리함을 첫 째의 이유 꼽았다. 갈 곳은 많고 시간은 늘 부족하지만 매사에 시간만 탓 할 수는 없다.
[혜화문 남쪽 성곽길 오르는 계단]
지난 3월 초순경에 혜화문을 시작으로 흥인지문 - 광희문 - 남산 봉수대 - 숭례문 - 경교장까지 완주 구간으로 정하고 출발했었다. 잔차를 타고 간다고 해도 어림잡아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출발을 했지만, 도중에 먹구름이 자욱허니 드리워져 광희문에서 숭례문을 경유하여 경교장에서 네 개의 스탬프를 찍은 것이 마음에 걸려 남쪽의 성곽길을 서두르게 되었다.
[성곽길 주변을 청소하시는 분]
<혜화문>을 시작으로 <경교장>까지의 두 번에 나누어 보았던 이야기다. 3월 초순 출정 때 핸폰에 도성의 앱을 다운받았고 성곽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꼭 경유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은 했지만, 사실 주변의 지형이 평탄하지 않아 사뭇 힘들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걍 지나친 곳도 많다. 아쉬움이 많았던 곳은 나중에 꼭 답사 해 보겠노라 다짐하면서,..
[낙산으로 오르는 길에 혜화문 방면 성곽]
<惠化門> 은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한양도성에는 커다란 대문이 네 개,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하는 작은 문이 네 개가 있는데 그 소문중 동북쪽에 위치한 문이다. 처음에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고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고 한다.
[낙산공원]
1684년(숙종 10) 문루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낙산 마을버스 종점]
이곳에 도로가 나면서 산맥의 능선을 댕강 잘라 놓은 듯 인위적인 절벽 위에 성문이 자리하는데, 1992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에서 올려자 보자니 꽤나 높아만 보인다. 계단이 시설되어 있지만, 철창을 달아 통행을 금지시켜 놓았다. 반대쪽의 성벽도 마찬가지다. 전망대로 오르는 듯 높다란 계단이 시설되어 있다. 탐방로 및 성곽의 주변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주 도로로 여겨진다.
[낙산에서 바라본 목멱산과 고층빌딩]
성곽길을 따라 오르니 산책하는 어르신들,... 조깅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곽길을 정갈하게 청소하시는 분,... 모두 소박하고 주변환경 속에 평온한 성곽의 아침을 열어가는 사람들이라 생각이 된다. 성곽을 휘돌아 오르니 이내 <낙산공원> 표지가 보인다. 낙산은 내사산의 동쪽에 위치한 산이다. 한양 도성의 내사산의 높이는 각각 낙산(동) 125m, 인왕산(서) 338m, 남산(남) 262m, 북악산(북) 342m 이다.
[지장암]
아주 오래전 이곳의 시민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 곳을 떠난 후 아파트가 헐리고 공원이 들어설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새로이 단지가 들어서 있고 주변이 정갈하게 꾸며진 듯 싶다. 정상의 종점에서 마을버스를 보니 참 반갑다는 생각이다. 토큰을 사용하던 때다. 버스가 끊기면 창신동 입구에서 정상에 위치한 집을 찾아 가기 위해 등반을 하듯 참 애를 먹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성벽에 얹힌 듯 교회의 십자가]
흥인지문을 향해 내려오는 길 좌측에 지장암이 있다. 스님이 계신지 알 수 없지만 불경 소리 없는 조용한 이 암자를 들여다 볼 수 없다. 뒷 켠으로 쪽문이 있지만 세콤의 영역임이 느껴진다. 성벽 암문을 통해 걸어 온 모자는 유치원 차량을 기다리는가 보다. 성곽주변이 예전과는 달리 많이 꾸며져 있다는 느낌이다. 부근에 이화장, 이화벽화 마을은 나중에 둘러봐야 겠다.
[흥인지문 앞 옹성은 사대문 중 유일하다]
교회의 십자가 탑이 성곽위로 솟아 있고, 흥인지문 가까이 성벽 주변엔 <이대병원>있었는데, 병원의 건물은 헐리고 <동대문성곽공원>의 이정표가 있다. 드디어 보물1호 <흥인지문>이다. 오랜만에 이 동대문을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다니,.... 예전에는 이 보물을 중심으로 교차로가 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변으로 녹지의 공원을 만들어 아주 가까이에서 음미할 수 있겠 해 주었다.
[옹성에 가려 문이 보이지 않는다]
<흥인지문>,... 종로 6가 69번지. 보물 제 1호
흥인지문은 1398년(태조 7)에 세운 당시 서울 도성의 동쪽 문이다. 지금의 문은 1869년(고종 6)에 다시 지은 것이다. 당시 서울 성곽에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세웠다. 동서남북의 사대문에는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의 글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는데, 그 중 동쪽의 대문을 흥인문이라 하였다. 현판에 특별히 지(之)자를 넣은 것은 동대문 앞의 평평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한 의미라고 한다.
[측면에서 본 흥은지문과 옹성]
흥인지문은 서울의 숭례문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성문이다. 성벽과 이어진 축대에 아치형의 통로를 내고, 그 위로 문루를 세워 성문을 만들었다. 서울의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없다. 문루는 문을 지키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의 역할도 한다.
[청계천 교량 위에 복원해 놓은 오간수문터]
문루 바깥으로는 벽돌로 된 담장과 나무판으로 된 창문을 설치해서 적을 막는 데 유리하게 하였다. 흥인지문의 문루는 구조의 맞춤은 간단하고 장식이 많은 19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한다. 또 흥인지문의 앞에 적을 막기 위한 반달 모양의 옹성(甕城)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 성문 가운데 유일하다.<안내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복원중인 성곽과 이간수문]
국보, 보물, 사적,.... 문화재를 여러가지 방법 등에 따라 분류해 놓긴 하였겠지만 사실 등급이 없이 모두 조상들로부터 전해 받은 국보라 여겨진다. 각각 고유 번호를 지정한 것은 나름 기억하기 좋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거니 생각을 하지만, 결코 가치의 순위를 정한 것은 아닐거라 여겨진다.
[역사공원 내 복원중인 성곽]
흥인지문 남쪽으로 청계천이 흐르는 곳의 다리 위에 <오간수문터>가 있다. 수문이 5칸, 즉 다섯 개의 수문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벽 아래로 냇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치한 수문으로, 1760년(영조 36)에 청계천을 준설하면서 복원하였고, 1907년(융희 1) 수문을 헐었다. 이듬해 3월 동대문 근처 성벽과 함께 이 수문의 성벽마저 헐고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를 세워 오간수다리.오간수교.오간수문교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광희문 - 수구문.시구문이라고도 불렸다]
옛 동대문운동장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공원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서울 성곽이 복원중인데 이 곳에도 <이간수문>이 복원되어 있다. 오간수문이 교량위에 터만 자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곽의 아래 아치형의 2칸 수문이 시설된 모습이다. 축성 당시 이 곳의 물줄기가 한 곳이 아니었음을 짐작해 봄직 하다. 아직 공원의 조성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것 같다. 평지와 거의 같게 조성된 성곽길을 누구든 쉬이 걸어 볼 수 있겠다.
[장충단공원 - 길건너 신라호텔 옆으로 성곽이다]
<광희문>은 서울성곽의 사소문 중에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이다. 서울성곽이 축성된 1396년에 지어졌으며, 수구문(水口門)·시구문이라고도 불렸으며, 서소문과 더불어 시신을 내 보내던 문이라고 한다. 속칭 남소문이라고도 하는데, <숙종실록>에 1711년(숙종 37) 민진후의 건의로 금위영으로 하여금 개축하게 하고,
[장충단비]
문루는 목재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후에 개축하기로 하여 1719년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한다. 광희문이라는 편액은 이때 써 붙였다. 그 후 6.25전쟁으로 문루와 성문 위 여장은 파괴되었으며 1976년에 고증을 거쳐 복원하였다. 지금의 광희문은 도로를 개통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위치를 옮겨 복원한 것이다.<안내문>
[장충단터]
<장충단터와 수표교>
장충체육관의 신축 공사가 한창이고, 도로건너편으로 장충단공원이 있다. 공원 내에 <장충단터와 수표교>가 있다. <장충단터>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때 순국한 대신과 장병들을 제사하기 위하여 광무(광무) 4년(1900)에 설치했던 제단터(祭壇址) 이다. 제단터에는 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장충단비>가 있다.
[수표교]
<장충단비>는 을미사변 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장충단에 세워졌던 비석이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되었고,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시위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일본군에 대항하다 죽었다. 고종황제는 1900년(광무 4)에 이들을 위하여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장충단을 세웠는데 이때 비석도 함께 세웠다.
[청계천에 있었던 다리]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장충단은 폐지되고 비석도 뽑혔다. 1920년대 후반에는 이곳에 벚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하고 이곳을 '장충단공원'이라 하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장충단비를 다시 찾아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세웠고,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물의 높이를 측정하였던 글씨 '경진지평']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장충단' 글시는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황제가 쓴 것이다. 당시 육군부장이었던 민영환이 비석의 뒷면에 새겨진 비문을 썼는데, 그 내용은 장충단을 세우게 된 내력과 의미를 기리는 것이다.
[틀어져 세워진 교각]
<수표교>,... 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이다. 이 다리는 청계천을 가로질러 쌓은 돌다리로, 물의 수위를 측량하던 관측기구인 수표(水標)를 세우면서 수표교라 불렸다. 한양 도심을 흐르는 개천(開川, 지금의 청계천)의 다리는 조선 초에 토교(土橋)나 목교(木橋)로 지었다.
[정해개축]
하지만 태종 연간부터 석교로 교체했는데, 수표교도 태종 ~ 세종 재위 기간에 돌로 개조했다.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시작하면서 철거하여 처음으로 옮겼다가, 1965년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다리 길이는 27.5m, 폭 7.5m, 높이 4m이며, 재료는 모두 화강석이다. 교각 함부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만들었다.
[3.1운동 기념탑의 좌측 조형물]
1441년(세종 23)에는 교각에 경진지평(庚辰地坪)이란 글자를 새겨 네 단계로 물 높이를 측정함으로써, 다리 자체가 수량을 측정하는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로 발전하였다. 수표교와 함게 있던 수표(보물 제838호)는 장충단까지 같이 왔다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
[3.1운동 기념탑의 우측 조형물]
<3.1운동 기념탑>
이 탑은 일본제국주의의 잔혹한 식민통치로부터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평화적으로 비폭력 독립운동을 전개한 3.1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국민들의 호국애족정신을 널리 고양하고자 온 겨례의 정성을 모아 199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제50주년 기념일에 착공하여 3.독립운동 80주년 기념일인 1999년 3월 1일 준공하였다.
[끊어진 성곽길의 표식]
3.1독립운동은 세계 최초의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세계 최초의 천도교.기독교.불교의 종교연합운동으로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무저항운동을 비롯하여 전세계 비폭력 평화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기념탑의 높이는 3.1독립운동의 거사일인 1919년을 의미하여 19m 19cm로 하였으며, 천.지.인과 천도교.기독교.불교 연합의 상징인 3개의 기둥축을 하늘 높이 비상시켜 삼태극(우주)을 원구로 구성하고 그 위에 동서남북 4방위를 조형화하여 우주를 힘차게 비상하는 민족웅비의 상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성곽을 중심으로 구 경계석]
국립극장에서 오르는 곳의 잘려진 성곽에는 차도의 노면에 성곽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식을 해 두었는데, 이 성곽을 기준으로 용산구와 중구의 경계임을 알려주는 표석이 박혀 있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지형에는 그래도 많은 부분 온전한 성곽이 남아 있는 듯 싶다. 콘크리트로 개축한 여장의 부분들이 이들과 잘 어우러지지 않는 부자연스러움이 있기는 하지만,...
[남산 셔틀버스]
평탄하게 보여지는 길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오르려니 제법 숨이 찬다. 남측포토아일랜드에서 잠시 쉬었다. 성책을 따라 이넘을 메고 가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쉴 새 없이 오르는 셔틀버스는 전기차다. 타워 주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쩍인다. 서울의 명물 남산, 그리고 타워가 있음에 그러할거다. 서울의 중심에서 한 눈에 사방을 조망하기 참 좋은 곳이기 때문에,....
[포토아일랜드에서 바라본 용산]
<남산봉수대>는 서울시 기념물 제14호 이다. 전국의 봉수가 최종적으로 이 곳에 전달되도록 하였는데, 중앙봉수소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했다.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4년까지 500여년간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옛 지명을 따 <목멱산봉수>·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라고 하기도 했다. 동쪽부터 서쪽까지 5기의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의 봉수대는 고증을 거쳐 복원한 1개소라고 한다.
[서울의 명물 남산타워]
봉수대를 지키는 군사들과 열심히 기념촬영을 하는 외국인들,... 한복의 복식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외국인 같은데, 우리의 문화를 알리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월요일을 제외한 날 오후에 무술 등 시범공연이 있는 듯 싶다. 여러 무리의 촬영을 피해 나도 한 컷 부탁해 보았다.
[길이 나면서 많이 끊어진 성곽]
<숭례문> 한양도성의 정문이면서 국보 제1호 이다. 현판을 쓴 사람은 양녕대군, 관악산의 화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로로 글씨를 썼다고 하는데, 현판을 가려놓아 글씨는 볼 수 없다. 몇 해 전에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동안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가림막으로 둘러쳐져 있었지만, 이제는 가림막도 걷어지고 마무리 주변 조경 공사만 남은 듯 싶다. 멀리 보이는 밝은 성곽과 성문 주변으로 공사 차량등이 어수선해 보인다. 완공되는 날 다시금 찾아봐야 겠다.
[팔각정 앞 외국인들]
<서소문>터는 현 중앙일보 부근일 거다. 고층건물들이 빼곡한 이곳에서부터 강북삼성병원 경교장을 지나 경희궁 인근까지의 구간 성곽이 제일 길게 헐려 있다. <돈의문>은 정동로터리 부근일텐데 사대문 중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는 대문이 되었다. 언젠가 성문의 복원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은것도 같지만, 많은 건물들때문에 복원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목멱산 봉수대]
성곽의 종착지 <경교장>은 사적 제465호 이다. 현재 강북삼성병원 응급실 옆에 위치한 건물로, 이 곳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에 금광업을 하던 최창학의 양옥 주택이다. 설계와 시공은 김세연이 담당하였다. 경교장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의 거처로 쓰이면서 근처 개울에 있는 경교라는 다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봉수대 지키는 군사]
건물 각 부분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1층의 응접실과 식당에 있는 완만한 곡면의 돌출창, 2층의 연속 아치창, 지붕 중앙부의 도머 창으로 단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물의 1층은 테이블과 소파, 의자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2층은 일본식 다다미방들을 복도 양쪽에 두었다. 백범은 광복 후 3년 7개월간 이곳에 머물면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1949년 6월 26일 이곳에서 저격을 받아 서거했다.
[관광객들의 관심]
백범 서거 후 이곳은 자유중국 대사관저로 쓰였고, 6.25 동안에는 미 특수부대 시설로, 휴전 후에는 월남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에서 인수하였다. 그 후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였으나 외관과 지붕은 지금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백범이 사용하던 2층의 침실 부분을 복원하여 백범기념실로 사용하고 있다. 백범을 향했던 총탄의 자국은 그날의 모습 그대로 침실 창의 유리에 남아 있다.
[복원중인 숭례문]
세심한 관찰은 아니더라도 한양도성 성곽길을 둘러보았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주변의 유적.유물들을 모두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기회를 두어 점차 넓혀보아야 겠다. <인.의.예.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불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남을 공경하고 양보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
[경교장]
선인들이 후세에 꼭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라 여겨 본다. <서울한양도성스탬프투어>,...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참 좋은 탐방이었다. 스탬프 찍는 곳은 동대문 옆 관리실, 남대문 공사장 휀스에 달려 있음, 삼성병원 응급실 앞 관리실, 숙정문 부근 말바위 안내소에 있으며 안내지도를 교부받을 수 있다. 귀여운 완주빼지 속에 그려진 도성의 모습처럼 성곽길을 늘 가슴에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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