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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행

서울 동대문구(1) - #선농단 #선농제 #신농씨 #후직씨 #농경문화 #친경의례

by 포리시스 2014. 4. 3.

   서울 동대문구(1) - #선농단 #선농제 #신농씨 #후직씨 #농경문화 #친경의례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 19길 52에 위치한 <선농단>사적 제 436호 이다. 잔차를 몰아 경동시장을 지나고 개천의 다리를 건너 주택가 골목을 이리저리 돌며 성일중학교를 지나고 언덕에 위치한 종암초등학교 앞에 도착을 하니 앞 쪽으로 공사장 휀스가 높다랗게 쳐져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선농제를 지내고 친히 경작 의식을 거행하던 곳]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선농단과 어린이공원의 푯말을 찾을 수 없다. 주변을 살피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지나온 공사장에 다시 도착을 하니 비로소 이 곳 공사장 내에 선농단이 있단다. 공사장 관계자의 출입통제에 멀리서 온 길손이라며 어렵게 부탁을 하고 사진 몇 컷 담겠노라 부탁을 했다.

 

[선농단 입구에 서울종암초등학교가 있다]

 

   무슨 용도의 공사인지 앞 쪽으로 아주 깊게 파 내려간 곳에 콘크리트 기반시설 중이고, 사무실로 쓰이고 있을 컨테이너 대여섯 개가 둘러져 있어 선농단의 모습은 뵈지 않는다. 우측으로 천연기념물 제 240호로 지정된 500여년 된 향나무와 그 앞에 왕릉에서나 볼 법한 문인석인지 호석이 서 있다.

 

[공사장 입구를 들어서면서 좌측에 있는 향나무]

 

   이 곳은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는 <선농제>를 지냈던 제단이 있는 곳이란다. <선농제>는 중국 고대 전설에서 농사를 관장했던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지내는 제사다. 임금이 선농제를 올리고 친히 경작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던 농경문화의 상징적 유적지이다.

 

[무덤을 수호하는 문인석으로 보이는데 향나무를 바라보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였으며, 1476년(성종 7)에는 관경대(觀耕臺)를 선농단 남쪽에 쌓고 친경의례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친경의례>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의식이다. 먼저 왕이 선농단에서 제사를 올리고 나서 적전(籍田)으로 나아가 친히 밭을 갈았다.

 

[선농단의 뒤쪽에서 본 단의 내부 모습]

 

   그 다음에 왕은 관경대에 올라 세자, 대신, 백성들이 순서대로 적전을 갈고 씨 뿌리는 모습을 관람하였다. 친경 후에 왕은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왕은 소를 잡아 탕을 만들어 대접을 하였는데 이는 현재의 설렁탕의 기원이 된 <선농탕>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선농단과 주변의 공사장 컨테이너 - 주변이 몹시 어수선하다]

 

   친경의례는 대한제국 말기까지 계속되었으나, 1908(융희 2)에 선농단의 신위를 선잠단과 함께 사직단에 모시고 터는 일제가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정부 출자 명목으로 빼앗은 뒤부터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또한 일제의 계획적인 문화말살 정책의 일환이었을거라 여겨진다.

 

[천연기념물 제240호 - 향나무]

 

   현재 공사장 주변에는 선농제를 올렸던 단과 천연기념물로 제 240호로 지정된 <향나무> 가 있는데, 이 나무는 선농단이 세워질 때 심어졌다고 한다. 컨테이너에 둘러진 어수선한 선농단,.... 공사가 어느 시기에 완공될지는 알 수 없다. 잦은 개보수와 주변 환경의 정비에 따른 문화재가 얼마나 원래의 모습을 지니게 될지는 모르지만, 녹음이 드리워지는 계절에 다시금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