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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기행

#동해향교 #교육기관 #명륜당 #동.서재 #대성전 - 강원 동해시(1)

by 포리시스 2020. 1. 28.

짧은 명절 연휴 가족들 동행하여 강원도 동해시를 다녀왔다. 동해시 승지로 84-3에 <동해향교>가 있다. 이 향교에 대한 안내문이나 연혁이 없어 정확한 내용을 적기 어려워 네이버의 힘을 빌었다.

 

 

[동해향교 표지석과 김씨열녀각]

 

   1980년 명주군의 묵호리와 삼척군의 북평리를 병합하면서 동해시가 발족되고, 이에 따라 두 지방에 각기 편입되어 있던 유림들이 1990년에 동해유림을 결성하게 되었는데,

 

 

[홍살문]

 

   동해향교는 사도창달과 지방문화발전을 위한 구심점이 마려뇌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과 동해유림의 독자적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홍살문에서 본 동해향교 전경]

 

   동해향교의 건립 계획은 1990년 동해문화원에서 결의되었는데, 1993년 7월 15일에 동해교육청 한기태 교육장이 사유지 200여 평을 향교건립 부지로 기증하였고,

 

 

[명륜당]

 

   같은해 9월 11일 유도회동해지부를 결성하면서 동해향교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94년 4월 16일에 대성전을 건축하기위한 목재를 확보하고,

 

 

[명륜당]

 

   같은 해 6월 7일에 진입로의 교량 공사를 위하여 동해시에 협조를 구하면서 교량 공사를 의뢰하여 1개월 후 완공하고, 9월 12일에 대성전 정초를 시행하였으며,

 

 

[명륜당과 궁터]

 

   11월 24일에 대성전의 입주상량식을 거행하고, 12월 12일에 개와를 완료하였다. 1995년 3월 16일에는 문묘문선왕영정과 5성. 공문10철. 송조 6현. 우리나라 18현의 제상과 향로상 등이 제작되었고,

 

 

[대성전 앞 삼문]

 

   같은 해 4월 15일에 39위의 위패를 봉안하는 고윤제를 거행하였으며, 동해향교 건립을 결의한 후 6년만인 1995년 6월 29일에 개교하였다.는 내용이다.

 

 

[삼문에서 본 대성전]

 

   여러 지방의 향교 설립에 비하면 작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건축물의 규모에 있어서는 비교적 넓은 공간을 지니고 있다.

 

 

[동재.동무]

 

   작은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커다란 홍살문의 규모와 확트인 앞 마당에 명륜당 옆으로 작은 궁터를 지닌 모습에서 문.무를 연마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된다.

 

 

[서재.서무]

 

   향교와 서원의 특색으로 본다면 홍살문을 지나고 삼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동.서재가 그리고 전면에 강당이 그 후면에 내 삼문을 통과하면 제향공간으로 나뉘어 지고 있는데,

 

 

[대성전과 동재]

 

   이 곳의 향교에는 앞 마당에 커다란 명륜당을 두었고, 그 뒤로 삼문을 지나면서 제향공간 내에 동.서재, 동.서무를 두어 지방의 특색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성전과 한 공간을 지닌다는 좀 색다른 구조가 눈에 띄었다.

 

 

[대성전과 서재]

 

   명륜당의 좌측 공터에 비록 거리는 짧을지언정 궁터를 마련하여 심신수련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실제 사용여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

 

 

[대성전]

 

   동해향교의 표지석 부근에 삼척김씨열녀각이 있다. 열녀 김씨는 문제홍의 처로서 본은 삼척이다. 어릴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만 아니라 출가하여도 남편을 정성껏 모셨다.

 

 

[대성전 앞 삼문]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중병으로 생명이 위독하게 되자, 김씨부인은 좋은 약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제단을 쌓고 매일 기도를 올렸다.

 

 

[명륜당 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병은 회복되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김씨부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남편의 입에 수혈하여 일시 남편을 소생케 했다.

 

 

[향교건립비문 같다]

 

   지아비의 생명을 구하고자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한 한 여인의 지극한 정열을 기려 후인을 이 곳에 열녀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