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국립의 <향교>와 사립의 <서원>이 있다. 두 교육기관이 각 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면 성균관은 서울에 있다는 차이가 있겠다.
서울에도 향교가 있다. 김포군에 있던 <향천향교>가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편입되어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지방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성균관을 방문하기에 앞서 전각의 배치가 가장 궁금했다. 앞서 말한 두 교육기관의 최상위에 있는 기관으로 단연 전학후묘의 구조를 띄고 있을거라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문묘의 공간이 앞쪽에 위치하고, 많은 유생들을 교육하였을 명륜당과 숙소의 건물인 동.서재가 그 뒤에 배치되어 있다.
비록 건물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많은 유생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식당의 건물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성균관의 역사와 유교의례에 대한 안내문의 내용을 옮겨 본다.
<성균관(成均館)의 역사(歷史)>
성균관은 고려말과 조선시개의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의 명칭으로, 학궁(學宮) 또는 반궁(泮宮)이라고도 하였다.
성균(成均)은 음악의 조율(調律)을 맞춘다는 말로서 어그러짐을 바로 잡아 이루고 과불급(過不及)을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최초로 나타난 공식적인 교육기관은 372년에 세워진 고구려의 <태학>이다.
이곳에서 경전읽기를 비롯하여 활쏘기 등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 때 전통적인 유교 교육이 진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제에서도 오경박사를 두어 학생들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쳤으며, 신라에서도 역시 682년에 국학을 세워 <논어>와 <효경>을 필수과녹으로 하는 유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특히 이 무렵 백제의 유학자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유교를 전파하였다. 고려시대에는 992년에 국립대학인 국자감을 설립하여 유교 경전을 단계벌로 교육하였다.
국자감에서는 경전교육과 더불어 고려 초기부터 '공자묘'가 세워져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추모하고 그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여러 가지 의식이 행해졌다.
고려 때까지 개성에 있던 성균관은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가 수도를 한양으로 옮김에 따라 139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대학으로 유교뿐만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이끌어 갈 인재의 양성, 풍속의 교화 등으로 유교이념에 입각한 이상사회 건설에 굳건한 토대가 되었던 성균관과 향교는 일본의 침략으로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1910년 무력으로 우리나라를 합병한 일본은 국가이념을 부정하고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합병 직후 성균관을 폐지하고 교육기관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성균관을 폐지한 일본은 경성제국대학을 국립대학으로 설치하고 성균관을 사설전문학원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에 따라 유교 역시 크게 침체되었다.
그러나 광복과 더불어 성균관을 재건하고 유교를 부흥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전국 유림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어 1946년 9월 25일 성균관장으로 선출된 김창숙 선생의 주도 하에 전국유림의 뜻을 모아 성균관대학을 설립하여 민족 교육의 맥을 잇게 하였다.
현재 성균관은 향교와 더불어 유교사상과 전통문화 계승발전의 산실로서 그 맥을 잇고 있다.
춘추 석전과 삭망 분향 등 유교의례를 봉행하고, 청소년인성 및 예절교육, 유교문화창달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교 의례>
1. 석전(釋奠)
만세종사이신 공자께서 남기신 인의도덕의 이상을 근본삼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효제충신의 실천과 수제치평의 도리를 천명함에 있어 배사모성의 예로서 생폐예제를 헌설하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전례를 봉행하는 것을 석전이라고 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한다. 우리나라의 석전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는 고래의 악기와 제기를 사용하여 문묘제례악을 연주하고 팔일무를 추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커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분향(焚香)
음력 초하루와보름마다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현에게 향을 피우는 의례를 분향이라고 한다.
성균관과 전국 향교 대성전에서 일제히 거행된다. 집례의 창홀에 따라 헌관이 대성전에 들어가 향을 사른 후 네 번 절을 올린다.
3. 고유(告由)
성균관과 국가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내용을 공자에게 아뢰는 의례를 고유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의 중요한 관직의 임명 때, 대성전을 수리하기 위해 위패를 이안하거나 공역이 끝나고 다시 환안할 때 의식을 거행했다.
현재 성균관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신임 임원이나 향교 전교를 임명할 때, 성균관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 때 올리고 있다. (안내문) 기회가 되면 석전행사 때 참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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