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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만의 택리지를 꿈꾸며,...

제주도 기행21

#양현사 #고득종 #김진용 는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가 조선조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 고득종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31년(순조 31) 제주목사 이예연이 김진용을 영혜사에 배향하였다가, 1849(헌종 15)에 제주목사 장인식이 김진용을 향현사로 옮겨 병향하였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이 서원. 사우 대동철폐령에 의하여 철사된 후 제주 유생들이 고득종과 김진용의 덕행과 공적이 후세에 깊이 묻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오현단 내에 를 세우고 제향하였다. 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제주. 자는 자부, 호는 영곡. 시호는 문충이다. 1413년(태종 13) 효행으로 천거 받아 음직으로 직장이되고, 1414년 친시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호군. 예빈시판관 등을 거쳐 1427년(세종 9) 다시 문과.. 2021. 5. 9.
#제주성지 #제주읍성 #제이각 #적루 #장대 #치성 는 제주특별자치도 지정 기념물 제3호로 제주시내의 중심지를 빙둘러 축조되었다. 언제 처음 쌓여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411년(태종 11) 정월 제주성을 정비토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제주성은 1411년 이전에는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 기록을 보면 성곽의 둘레가 4,394척, 높이는 11척이라 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산지천과 병문천 사이에 축성된 규모를 말하며, 지금 성곽의 기초가 되고 있다. 1565년(명종 20) 목사 곽흘이 을묘왜변의 고통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성곽의 규모를 확대하고, 격대와 타첩을 갖추었다. 1599년(선조 32) 목사 성윤문이 성벽의 높이를 더 높이는 등 지금 성벽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어 1780년(정조 4) 목사 김영수가 산지천이 범람.. 2021. 5. 8.
#대정현성 #추사적거지 #추사 김정희 #추사체 #강도순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는 조선조의 훈적 가문의 하나인 경주 김문에서 병조판서 김노경과 기계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김노영 앞으로 출계(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그의 가문은 안팎이 종척으로 그가 문과에 급제하자 조정에서 축하를 할 정도로 권세가 있었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예조 참의. 설서. 검교. 대교. 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18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순조의 특별 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로 복직되고, 그도 1836년에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 그는 다시 10년 전 윤상도.. 2021. 5. 8.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아래 벌판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가까이 가지 않으면 비행장, 격납고 등을 잘 알 수 없겠다. 이 비행장은 일본 본토에 있던 비행장보다도 컸다고 한다. 안내문의 내용을 옮긴다.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정읍 상모리 아래쪽의 너른 벌판에 제주도민 등을 동원하여 건설한 군용 비행장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이 비행장을 전초 기지로 삼아 약 700km 떨어진 중국의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많은 전투기를 '알뜨르'에서 출격시켰다. 그러나 1938년 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자 오무라 해군항공대는 중국 본토로 옮겨졌고, '알뜨르비행장'은 연습 비행장으로 남았다. '알뜨르비행장'은 '마을 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의 뜻을 갖고 있는 상모리 '알뜨르'에 조성되어서 붙은 이름이다. 란 제주어 표기.. 2021. 5. 6.
#방주교회 #노아의 방주 #건축가 이타미 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방주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물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한 척의 배 같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방주교회 홈페이지에서 옮겨 보았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 건물은 "건축가 이타미 준"의 설계에 의해 2009년 3월 16일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물 위에 떠있는 형태로 물과 빛 그리고 아름다운 나무 ZINC 소재의 메탈로 이루어진 성전 건축물입니다. 2010년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의 건축물 대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그저 주님 한분만 바라볼 수 있는 교회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런 바램때문에 방주교.. 2021. 5. 6.
#일관헌 #근민헌 #관청할망 #안할망 '근민헌'은 객사의 서쪽에 있다. 언제 이 현판이 걸린 것인지 알 수 없다. 검색해 보니 '일관헌'이라고 확인된다. 조선시대의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청사로 1899년 군수 강인호가 중수한 뒤에 불타버렸고 1903년 목사 홍종우가 일관헌으로 고쳐 편액하였다고 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좌.우 벽은 현무암 돌로 쌓았다. 근민헌의 뒤에 두 개의 비가 있다. 군수 채수강 청덕비(5년 동안 참한 정치를 펴서 호적을 보관하는 창고를 짖고, 향사를 다시 고쳐 모든 백성이 봄을 만난 듯 했다)와 군수 강우진 불망비(변란을 대비하여 군수물자를 구입할 자본을 마련하였고, 호적을 정리할 종이를 비축하였으며, 천막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사용하도록 하였다)이다. 그 뒤로 관청할망(안할망)을 모신 전각이 있다. 안내문의 .. 2021. 5. 5.
#정의읍성 #성읍민속마을 #벅수머리 성읍민속마을을 둘러 쌓아진 성이 정의읍성이다. 성벽은 검은색 현무암으로 쌓아져 특유함이 돋보이는 듯 싶다. 근민헌과 정의현 객사, 정의 향교가 성 내부에 있다. 동.서.남으로 세 개의 성문과 문루가 있으며, 북문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남문을 향해 길이 이어져 있다. 세 곳의 성문 앞에선 돌하루방이 세워져 있는데, 특히 이들을 '벅수머리'(돌로 만든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제주도에서 안녕과 질서를 수호하여 준다고 믿는 수호 석신)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2,986철, 높이가 13척 이라고 한다. 2021. 5. 5.
#오름터 민속마을 #정낭 #연자방아 오름터 민속마을 관람기이다. 정의현 읍성이 둘러진 성읍민속촌 가까이 있지만, 성곽 밖에 여러 마을 중 한 곳으로 대여섯 채의 가옥에 실제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도 있다. 이 마을에서 자체 운영하는 안내소에 동네 분으로 여겨지는 해설사 분이 직접 건축물은 안내하며 제주 지역의 삶의 방식, 언어 등을 재미있게 들려 주신다. 가옥 몇 채 되지는 않지만, 가옥의 구조, 용도, 그리고 주변 특성과 살아온 방식 등 전통의 제주 문물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제주를 흔히 ‘삼다(돌, 여자, 바람이 많다)’, ‘삼무(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라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포스팅하겠지만, 대문을 갖춘 곳이 있었다. 그 집 주인의 땅을 밟지 않고 지날 수 없는 부자의 집이라고,... 전통.. 2021. 5. 4.
#정의 향교 #전패 정의 향교는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5호로 관람은 하지 못했지만, 담장 너머로 몇 컷 담아 보았다. 안내문의 내용을 옮겨 보았다. 이 향교는 1408(태종 8) 홍로현(서흥동)에 처음 세워졌다가, 1420(세종 2) 성산읍 고성리로 옮겨졌다. 1423년(세종 5)에 현 성읍리인 진사리 서성 밖에 건립되었다가 1849(헌종 15) 현 위치에 옮겨졌으며, 1967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향교건물이 남쪽을 향하는 것과는 달리 이 향교는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대성전과 학문 공간인 명륜당이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 정의향교에는 현재 전패가 보관되어 있는데, 원래 전패는 지방 각 고을의 객사 안에 모신 ‘전’이란 글자가 쓰여진 나무패이며, 이는 ‘대전’ 곧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였다.. 2021. 5. 3.
#진빌레 밭담길 #밭담 #제주월정리 #머들이네가족 #돌무더기 세계자연유산마을 월정리 진빌레 밭담길,...... 검은돌 사이로 구멍이 슝슝슝~~~ 돌들이 쌓여 있지만, 강한 태풍에도 끄떡없단다. 약 2.5km의 구간 한 시간여 남짓 걸으며 밭담과 어우러진 풍경을 마음속으로 읊어 시를 써 보아도 좋겠다. 소요시간 40여분인데, 사진 찍어대느라 시간 좀 걸린것 같지만, 아깝다는 생각 없이 걸어보았던 밭담길이였다. 밭담길 포토존에 설치되어 있던 액자가 높아 이곳으로 오시는 분들이 인증샷 하기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된다. 안내문의 내용을 옮겨 보았다. FAO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밭담 보전관리사업의 일환으로 제주밭담농업시스템과 농촌의 문화, 환경을 체험하고 지역홍보와 활성화를 위하여 조성되었습니다. 2014년 FAO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된 것은 제주.. 2021.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