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기행132 #경기 연천 #호로고루성 #재미산 #임진강 경기 연천의 은 사적 제467호이다. 처럼 임진강변의 자연 수직 절벽을 성벽으로 하고 그 위 평지의 동쪽에 성벽을 쌓아 만들어진 성이다.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성벽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성벽의 안내문과 전윤호 시인님의 시를 함께 올려본다. [연천 호로고루 동벽] 호로고루 동벽은 평지로 이어져 적의 침입이 쉬운 성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는 성벽이다. 성벽은 높이가 10m이고 아랫부분의 폭이 40m, 길이가 90m에 달할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이 성이 아니고 이라고 부를 정도로 웅장하다. 동벽을 만드는데 들어간 흙과 돌의 양이 대략 15,996㎡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토목 공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호로고루 동벽은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지만 668년 고구려.. 2023. 3. 9. #경기 연천 #신라 경순왕릉 #사적 제 244호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에 위치한 은 사적 제 2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의 왕릉 중에서 도성 경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일한 왕릉일거다. 조선의 왕릉 중에도 도성 100리 밖에 위치한 릉이 있다. 강원 영월에 있는 단종의 릉과 같이 비운의 왕으로 기록된다. 기울어져가는 신라의 국운을 감지하고 더 이상 백성들의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며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받쳤다.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고 항복한지 43년 만인 고려 경종 3년(978) 세상을 떠나 경순이란 시호를 받고 이곳에 묻혔다. 경순왕릉 안내문의 내용을 옮겨 본다. 경순왕(927~935 : 재위)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휘는 부이며 제 46대 문성왕의 후손이다. 경순왕이 경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할 당시에는 국력이.. 2023. 2. 5. #경기 연천 #숭의전 #왕건 #마전 #사적 제 223호 경기 연천의 은 사적 제 223호다. 고려 태조 왕건과 후대 3왕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곳으로 고려조 종묘이겠다. 수도였던 개성과 철원도 아닌 이곳에 세워지게 된 이야기와 작은 역사 이야기를 적어본다. 연산군의 폭정에 조강에 몸을 던진 당대의 뛰어난 시인 정희량(1469~1502)이 마전의 한 객관에 머물며 남긴 시를 보면 당시까지만 하여도 마전은 매우 궁벽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임을 알 수 있다. 왜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임진강변의 외딴 시골마을에 태조 이성계는 전조의 제사를 받드는 사당을 세웠을까? 적막한 마전군 어느 때 관아를 지었나 무너진 담에 푸른 풀이 더북하고 부서진 벽에 파란 이끼 끼었네 (중략) 태수는 공무가 없어서 거문고 타는 동헌이 대낮에도 한가하다 이는 마전의 앙암사가 고려 태조.. 2023. 1. 29. #경기 연천 # 당포성 #고구려 지난 사진을 정리하다 코로나19 이후 조심스레 다녀왔던 연천의 유적지 당포성, 호로고루성, 경순왕릉, 숭의전을 차례로 올려볼까 한다. 게으름의 시간이 주변의 풍경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모르지만, 문화재만은 크게 변함이 없을거라 여긴다. 현장 안내문의 내용을 옮긴다. 당포성은 고구려시대 임진강변에 돌로 쌓은 평지성이다. 당포성은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높은 수직 절벽이 끊어진 지점에 구축되어 있다. 임진강의 물길이 만들어낸 수 km에 달하는 수직절벽은 현무암 주상절리로 되어 있는데, 높이 20여 미터에 달해 별도로 성벽을 쌓지 않더라도 적을 막아낼 수 있는 자연 성벽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평지로 연결된 부분만을 돌로 쌓았는데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2023. 1. 19.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9호 고사성어 의 이야기를 옮겨 본다. 제나라의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나라 왕이 일부러 안영의 기를 죽이려고 제나라 출신으로 초나라에서 도둑질을 하다 잡힌 죄수를 끌고 오게 했다. 그런 다음 초나라 왕이 그 죄수에게 "너는 어떤 죄목으로 잡혔느냐?"고 하자 죄수가 "도둑질을 하다 잡혔습니다."고 하였다. 또 그 죄수에게 "너는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묻자 죄수는 "제나라 출신입니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초나라 왕은 안영에게 "이거 제나라 사람들은 순 도둑놈들 뿐이로구만!"하고 비웃었다. 이에 안영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신이 듣건대 귤을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 잎은 비슷하지만 과실의 맛과 향은 다릅니다. 무엇 .. 2023. 1. 3.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통제영학당지 #최초 해군사관학교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9호 강화대교를 건너면 관문 상징의 커다란 대문 구조물이 서 있다. 그 좌측으로 낮은 봉우리에 갑곶돈대가 위치하고 그 앞쪽으로 진해루가 있다. 강화에는 내성(강화 읍성)과 외성(돈대 사이의 해안에 쌓은 성)이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진해루(외성의 대문 역할을 하였을 것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지난 여름 방문하여보니 성문이 복원되어 있다. 예전에는 이곳 강화로 들어오는 관문의 역활을 하였을 거다. 이 관문을 들어서면 의 터가 있다. 비록 운영기간이 얼마되지 않아 아쉽지만, 자주국방의 의지와 역사를 음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은 조선 고종 30년(1893)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해군사관학교이다. 고종은 서양 함선인 이양선의 출몰이 잦아지자 해양 방어의 일환으로 군함을 건조하고 구입하려 했다. .. 2022. 12. 26. #강화군 하점면 #봉가지 #하음 봉씨 #봉우 #장정리 봉은사 #석조여래입상 는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420-2에 있는 연못으로 강화군 향토유적 제25호이다. 이곳은 하음 봉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못이다. 종친회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예종 2년(1107) 한 노파가 이곳에서 빨래를 하던 중, 하늘에 오색 구름이 떠오르면서 돌 상자 하나가 떠올랐다. 노파가 두려운 마음으로 열어보니 잘생긴 옥동자가 그 안에서 웃고 있었다. 노파는 이 아이를 왕에게 바쳤고, 왕은 아이가 빨리 자라서 나라를 잘 받들고 크게 도우라며 봉우(奉佑)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후 아이는 과거에 급제하고 많은 공을 세워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졌고, 이때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으로 하였다 한다. 은 하점면의 옛 지명이다. 주변 장정리에는 봉은사터에 오층석탑과 앞 산 능선의 넘어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봉우.. 2022. 11. 15. #경기 화성 #화성 용주사 #사도세자 #정조 #천보루.홍제루 #효행박물관 화성 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습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넉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게 되었고,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이곳에 절을 지어 현릉원의 능사로서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 2022. 10. 10. #경기 화성 #융릉과 건릉 #사도세자 #정조 #사적 제206호 #현륭원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무덤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의황제로 봉해졌다. 이때 혜경궁 홍씨도 의황후로 봉해졌다. 융릉은 원래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합장릉인 융릉은 병풍석을 세우고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다. 석등은 전기의 8각형과 숙종, 영조대에 등장한 4각형 석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으로 건릉과 예릉의 기준이 되고 있다. 무덤의 석인도 사실적이고 예전에 가슴까지 숙여진 머리가 들려 있어 시원한 분위기를 내며, 문인석에서는 머리에 금관을 쓴 예가 나타나고 있어 19세기 이후의 무덤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창이적으로 만들었다. 건릉은 조선 22대 .. 2022. 10. 6. #경기 고양 #고양 송포 백송 #천연기념물 #최수원 장군 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침엽 교목으로,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떨어져 전체가 흰빛을 띄는 특징이 있어 예로부터 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중국이 원산지로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하며, 우리나라에도 일찍 전래되어 재배되었지만 번식력이 약해서 현재 그 수는 매우 적은 편이다. 은 높이 11.5m 둘레 2.39m로 측면에서 살펴보면, 가지가 마치 부챗살처럼 퍼져 있어 역삼각형으로 보이고, 나무껍질도 다른 백송에 비해 그리 희지 않은 편이다. 이 나무는 조선 세종(1418~1450)때 김종서가 개척한 육진에서 복무하던 최수원이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가져다 심었다 한다. 은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수종인 동시에 중국화의 문화교류사를 알려주는 나무로, 역사적, 경관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 2022. 9. 22. 이전 1 2 3 4 5 6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