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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만의 택리지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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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 #회랑 #중앙탑 앙코르 지역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1주일이라는 시간도 부족할 듯 싶다. 이 앙코르 와트는 물론이거니와 앙코르톰, 그리고 주변에 산재한 사원들이 위치한 지역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휘리릭~~~! 하루 반을 돌아 마스터한 것 같다. 앙코르 와트는 3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을 둘러친 회랑을 지나 2층으로 오르고, 2층의 회랑을 지나야 3층의 계단을 오를 수 있다. 3층의 네 모서리에 네개의 탑이 세워져 있고, 그 가운데 중앙탑이 있다.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쳐다보니 상당히 가파름을 알 수 있겠다. 3층의 관람이 금지된 날이라 오르지는 못했다. 1층의 회랑 길이가 약 800미터라고 하는데, 이 곳에 새겨진 부조의 벽화를 둘러보는 시간만 해도 몇시간 걸릴 것 같다. 사실 많은 다국적의 관.. 2021. 6. 10.
#앙코르 와트 #크메르 문명 #자야바르만 왕조 #바라 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는 이라는 뜻으로, 12~13세기 수리아바르만2세에 의해 건설되었고, 수리아바르만2세는 이 사원을 비슈누(흰두교 창조신)에게 받쳤다고 한다.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해자와 그 위로 솟아 오른 웅장한 탑들을 보면 37년만에 건설하였다는 이야기가 정말 믿기 힘들정도다. 현재의 기술로 건축을 해도 100년이 걸린다고 하니,........ 이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의 고려시대 쯤 될 것 같다. 2021. 6. 9.
#앙코르의 아이들 #앙코르왓 #캄보디아 이 아이들,... 참 많이 자라 성인이 되어 있을 거다. 선조들이 남겨 준 앙코르 문화 유적,... 아름다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품고 있지만, 정작 그 후손들의 현재 삶은 그리 풍요로워 보이지 않았다. 어느 다큐프로에서 그 정신을 이어가지 못함이 안타깝다는 현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도 한 때는 이 이이들의 모습처럼 '기부미초콜릿'의 시대가 있었단다. 그 시대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그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의 세계 경제대국으로 자리하기까지 혹독한 시련에도 굳건한 기반을 닦아준 기성세대의 희생정신에 늘 감사해야겠다. 2021. 6. 5.
#제주 성읍민속마을 #전통가옥 #풍경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야!" ~~~~ 언젠가 들어봄직한 말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의 전통. 문화를 나는 참 좋아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어 무척 아쉽다. 여러 분야에서 그 맥을 이어가는 분들에게 존경심을 표하고는 있지만, 무언가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회복되지 못할 것 같다. 성읍민속마을의 전통가옥이다. 과거를 상상하며 현재의 모습을 느껴보면 좋겠다. 2021. 5. 19.
#산방연대 #통신수단 #연대 #봉수대 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33-2에 위치한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21호이다. 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산방연대는 사계리의 산방산 남쪽 해안가 '연디동산'에 있으며, 모슬진에 소속된 것으로 대정현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연대는 최근에 보수한 것이다. 동쪽으로 당포연대(직선 5.7km), 서쪽으로 무수연대(직선거리 6km)와 교신하였다. 는 내용이다. 연대 입구에 에 관한 안내문이 있어 옮겨 본다. 산방산과 용머리는 어느 것이 먼저 생겼을까? 이.. 2021. 5. 18.
#관음사 코스 #한산 부종휴 #북벽 #왕관릉(왕관바위) 한라산의 관음사 등반코스,...... 관음사 입구, 부종휴 광장에서 시작되며 한라산 북벽쪽으로 오르는 등반로로 한산길이라고 한다. 성판악 코스보다 조금 더 아름다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를때에는 성판악보다 다소 힘든곳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 길을 걸으며 '부종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관음사 입구에 한라산을 사랑했던, 한라산이 기억하는 사람 한산 부종휴 상이 있다. 안내문의 내용을 옮긴다. 한산 부종휴(1926~1980)는 제주 세계자연유산의 선각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살아생전 식물학자, 산악인, 자연보호운동, 동굴탐험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제주 자연자원의 숨은 가치를 숱하게 밝혀냈습니다. '부종휴 한산길'은 부종휴가 식물을 조사하기 위해 다니던 한라산 등반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2021. 5. 18.
#한라산 #백록담 #성판악 생애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명산 한라산 등반길에 올랐다. 여러 등반 코스가 있는데, 성판악 코스가 길지만 무난하다고 하여 이 길을 택했다. 9.6km, 4시간 30분이 소요된단다. 등산 마니아가 아니라 더딘 걸음으로 참 많이 걸었다. 맑은 하늘이였으면 더욱 바랄것이 없었겠지만 그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아직도 언저리에 하얀 눈을 머금고 있던 백록담의 모습,....... 가슴뭉클~~~~ 한번구경오십쇼(1950m) 2021. 5. 14.
#고창환 고택 #성읍마을 주춧돌과 부재자 은 국가 민속문화재 제70호이다. 제주 성읍 마을 정의 향교와 이웃해 있으며, 19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여인숙으로 쓰였던 일이 있어 '여관집'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여관으로서 특별한 형태는 찾아볼 수 없고, 안거리(안채)와 마당을 가운데 두고 헛간채가 마주한 단출한 집이다. 큰길에서 올레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정낭(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 놓은 길고 굵직한 나무) 도 없이 마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안거리는 제주도의 전형적인 3칸 집 구성을 잘 보여 준다. 상방(대청마루)을 가운데 두고 구들과 고팡(고방)이 붙어 있다. 헛간채는 예전에 멍석이나 남방애(통나무로 만들어진 제주 특유의 절구) 따위를 두었던 공간이다. 1423년 정의현의 읍치를 성산읍 고성리에서 이곳 .. 2021. 5. 14.
#정의현 객사 #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의 주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인데, 지방관이 임금에게 정기적으로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를 올리는 곳으로서의 기능과 중앙 관리가 내려왔을 때 이곳에 머무는 숙소로서의 기능이다. 객사 건물은 이처럼 영빈관의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로잔치나 연회를 베푸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객사 건물은 전국적으로 형태가 비슷하여 일반적으로 정청(정무를 보는 관청) 3칸을 두고, 좌우에 동서 익사(날개집 - 중심이 되는 집채의 좌우에 붙어 있는 곁채)를 정청과 나란히 두었으며, 익사의 지붕은 정청보다 한 단 낮게 만들었다. 은 국가 민속문화재 제68호이다. 예전 정의 고을의 객사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본래 객주집이었다고 전해진다. 넓은 대지에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모커리(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에 가로 놓인 집채),.. 2021. 5. 12.
#하멜표류기 #하멜보고서 #하멜 #효종 산방산 남쪽 해안가에 커다란 범선모양의 이 있다. 2층 구조의 전시관 내부에 예쁜 범선과 우리의 판옥선. 거북선의 모형이 있다. 하멜에 대한 기록을 옮겨 보았다. 하멜은 1630년 네덜란드 호르쿰시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불고 있었던 해양 열풍에 휩쓸려 네덜란드를 떠나 1651년 7월 4일 바타비아(자카르타)에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의 포수로 입사했다. 하멜은 병졸에서 조수를 거쳐 곧바로 서기로 승진됐고 1653년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 13년간 조선에서 생활하다 조국으로 돌아갔으며 경위를 보고하고자 쓴 는 조선의 내부를 세계에 최초로 알린 것이다. 1651년 동인도 회사에서.. 2021. 5. 11.
#제주 최초 사립학교 #의신학교 #제주군수 윤원구 #의신학교 터 제주성지 남문의 성곽 아래에 위치한 향현사. 오현단. 귤림서원을 들러 본 후, 동문시장 방면으로 내려오다 보면 좌측에 의신학교 터가 있다. 건축물은 볼 수 없지만 담장 아래 새워진 표지석의 내용으로 학원을 새겨 본다. 제주군수가 설립하고, 최초의 중등교육기관, 제주지역 전 가구가 학원의 설립에 동참했다는 내용을 알 수 있다. 제주 오현의 학문과 귤림서원의 맥이 이어져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안내문이 내용을 옮겨 보았다. 1907년은 제주교육 역사의 중요한 해로서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사립의신학교(제주군수 윤원구가 설립)와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관립제주보통하교가 개설되었다. 학교가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 학당으로 향교 다음으로 오랜 전통을 지녔던 장수당과 그 뒤 귤림서원이 있었던 곳으로 고종 8년(.. 2021. 5. 11.
#귤림서원 #장수당 은 1578년(선조 11)에 제주판관 조인후가 기묘사화로 1520년(중종 15) 6월 제주도에 유배되어 사사된 김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의 적거지에 사묘를 세운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1660년(현종 1) 제주목사 이괴가 장수당을 건립하였고, 1667년(현종 8)에는 제주판관 최진남이 김정의 사묘를 장수당 남쪽인 현재의 오현단 안에 옮겨 짓고, 이를 사(祠)로 하고 장수당을 재(齋)로 하여 귤림서원이라 현액하였다. 1682년(숙종 8) 신경윤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으로 사액을 하고,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의 4현을 봉향하다가 1696년(숙종 22)에 이익태 절제사 때 송시열이 추향됨으로써 5현을 배향하게 되었다. 그 뒤 1850년(철종 1) 제주목사.. 2021. 5. 10.